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현'은 30년에 걸친 두 여성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 15부작 작품입니다. 김고은과 박지현이 연기한 류은중과 천상현의 이야기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선망과 열등감, 질투와 연민이 뒤섞인 인간관계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40대까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여정은 과연 친구 사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흥미진진한 전개와 몰입감 있는 연기, 그리고 스위스 조력사라는 무거운 주제까지 다루며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 작품입니다.
은중과 상현의 복잡한 우정 : 선망과 열등감 사이
드라마는 10대, 20대, 30대, 40대라는 네 가지 시간대를 오가며 은중과 상현의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비되는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현이는 부유한 대단지 아파트 입주민의 자녀로 예쁘고 공부도 1등을 다투는 완벽한 아이였던 반면, 은중이는 편모가정에서 자라며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조용히 지내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반장이었던 상현이가 선생님 부재 시 체벌 권한을 행사해 은중이의 손바닥을 때린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동경하던 아이에게 맞은 은중이는 깊은 상처를 받았고, 호감은 순식간에 미움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은중이는 오히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윤현숙 선생님이라는 옆반 담임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자신도 아버지가 없었다며 "아빠의 빈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워넣으면 된다"는 조언을 건넸고, 이는 은중이의 인생 전반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수련회 장기자랑을 계기로 베프가 됩니다. 서로에 대한 선망의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중이는 상현이의 집에 자주 놀러 가며 상현이 오빠 천상학에게 첫사랑 감정을 느낍니다. 김재원이 연기한 상학은 사진과 영화에 조예가 깊었고, 두 소녀는 그의 영향을 받아 훗날 진로도 그 방향으로 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학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상현이 집은 갑작스럽게 망해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갑니다. 은중이는 베프와 연락도 없이 이별하게 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대학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또다시 베프이자 룸메이트가 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상학이라는 남자가 등장하며 관계가 복잡해집니다. 은중이는 죽은 첫사랑 천상학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김상학에게 관심을 갖고 결국 연인이 됩니다. 그런데 상현이 역시 김상학을 사랑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더 복잡합니다. 상현이는 오빠의 PC 통신을 통해 오빠가 '무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고, '오맹'이라는 닉네임의 김상학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성치와 서유기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해진 두 사람의 대화를 읽으며, 상현이는 오빠를 사랑했던 김상학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상현이는 오빠의 자살 원인을 밝히기 위해 김상학에게 도움을 청하며 진실을 알게 됩니다. 천상학은 성정체성이 여성이었고, 이 사실로 인한 고통이 자살의 원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상학은 상현이 곁을 지키게 되고, 은중이는 두 사람 사이를 의심하며 불안해합니다. 김상학이 "흔들렸다"고 고백하며 은중이에게 매달리지만, 은중이는 자신이 방해꾼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별을 선택합니다.
사용자의 비평처럼 "나라면 대학에서 다시 만났다가 뒷통수 칠 때 완전 손절했을 텐데"라는 반응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은중이는 상현이를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상현이 엄마인 윤현숙 선생님에 대한 은혜, 상현이 오빠의 죽음이 준 충격, 그리고 평생 유일한 친구였던 상현이에 대한 애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현이는 은중이에게 절교를 선언합니다. 은중이가 보증금을 받지 않으려 하자 "너만큼 나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게 만든 사람은 없었어"라며 자존심을 세운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상현이의 복잡한 심리는 단순히 열등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기댈 줄 모르는 성격, 과도한 자존심, 그리고 깊은 자기혐오가 뒤섞여 있습니다.
스위스 조력사 : 죽음 앞에서 찾은 마지막 연결
드라마의 마지막 15부는 40대가 된 상현이 암 진단을 받고 스위스 조력사를 신청하며 은중이를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20대와 30대 때 두 번이나 절교했던 상현이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평생 유일한 친구였던 은중이에게 기대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사용자의 표현처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스위스의 제도들과 방식들을 보면서 괜찮겠다 싶으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허용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스위스의 조력사 제도는 엄격한 절차와 기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를 다큐멘터리처럼 세밀하게 보여주며,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상현이는 자신의 결정을 존중해달라고 은중이에게 부탁하고, 은중이는 친구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기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은중이가 보여주는 한없는 너그러움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섭니다. 사용자가 의문을 제기한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 드라마가 던지는 가장 본질적인 물음입니다.
은중이의 선택은 윤현숙 선생님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건넨 "빈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워넣으면 된다"는 말은 은중이의 삶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상현이와의 관계에서도 은중이는 끊임없이 빈 자리를 채우려 노력했습니다. 상현이가 거리를 둘 때마다 기다렸고, 상현이가 상처를 줄 때마다 이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리뷰어가 지적했듯이 "기다리기와 거리두기라는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은중이가 엄마의 죽음 앞에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 급한 일이 있다는 상현이에게 더 물어보지 않은 것은 은중이 역시 자존심과 콤플렉스를 가진 인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스위스로 향하는 여정에서 두 사람은 30년간 쌓인 감정을 정리합니다. 상현이는 왜 은중이만이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고, 은중이는 상현이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재확인합니다. 조력사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비로소 순수한 형태로 돌아갑니다. 선망도, 열등감도, 질투도 아닌, 그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로하는 관계 말입니다. 사용자가 "드라마를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라고 언급한 스위스의 제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화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여성 서사의 한계와 가능성 : 남자 캐릭터의 그림자
이 드라마에 대한 비판 중 하나는 "여성 서사 중심의 작품인 줄 알았더니 남자를 사이에 두고 여자 둘이 싸우는 내용"이라는 지적입니다. 김상학이라는 캐릭터가 은중과 상현의 관계에 미친 영향은 분명히 큽니다. 상현이가 김상학에게 사랑에 빠지는 서사는 드라마에서 가장 몰입도 높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선리 기원의 명대사까지 등장하며, 오빠를 향한 그리움과 김상학에 대한 사랑이 교차하는 상현이의 감정선은 섬세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삼각관계가 은중과 상현의 절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은중이가 "가장 화가 나는 게 내가 방해꾼이 되었다는 것"라고 말하는 장면은,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남녀 관계와 거리를 두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리뷰어의 지적처럼 "의도와 결과가 항상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아쉬운 점입니다. 각본은 절교의 원인이 김상학이 아니라고 선을 긋지만, 실제로 은중이의 전략 선택에 삼각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들이 대부분 부정적으로 그려진다는 점도 논란거리입니다. 상현이 아버지를 비롯해, 초등학교 남자 담임, 30대 시절의 영화 감독과 배우들까지 대부분 쓰레기로 묘사됩니다. 이런 세계관 속에서 김상학은 "희귀 유니콘남"으로 설정되는데, 김건우 배우가 '더 글로리'의 선명호로 유명하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남자들이 모두 쓰레기인 세상에서 유일한 좋은 남자를 두고 벌이는 경쟁처럼 보인다는 비판은 정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여성 서사로서 의미를 갖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은중이와 상현이의 관계는 단순히 남자를 사이에 둔 갈등이 아니라, 두 여성이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서로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상현이가 은중이를 "나보다 나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은중이가 상현이를 "나보다 뛰어난 아이"라고 생각하는 구도는, 여성들이 서로를 대하는 복잡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