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OCN에서 방영된 '신의 퀴즈'는 국내 최초 메디컬 수사극이자, 성공적인 시즌제 드라마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포르피린증, 길랑바레증후군처럼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희귀병들이 살인 사건의 열쇠가 되는 구조가 신선했죠. 저도 처음엔 2010년작이라는 점 때문에 망설였는데, 막상 보니 지금 봐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완성도였습니다.
희귀병을 소재로 한 독특한 수사 방식
드라마는 천재 법의관 한진우가 부검을 통해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희귀질환들은 실제 의학 자료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반인은 거의 접할 수 없는 특이한 케이스들이죠.
1화에서 다룬 포르피린증은 '드라큘라병'이라 불리며,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타들어가는 증상을 보입니다. 2화의 길랑바레증후군은 면역체계가 신경을 공격해 마비를 일으키고, 독감 백신 같은 자극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물 알레르기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는데, 10초만 샤워해도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쇼크사할 수 있다는 설정이 현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희귀병을 스토리에 끼워 맞추다 보니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드문 질환들이라 "실제로 어딘가엔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경험상 이런 의학 소재 드라마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신의 퀴즈는 적절한 선을 유지했습니다.
법의학적 디테일과 옴니버스 구성의 힘
드라마가 시즌5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옴니버스 구성 덕분입니다. 매 회 다른 사건, 다른 피해자, 다른 희귀병을 다루기 때문에 호흡이 짧고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정주행하다가 시간이 없으면 언제든 끊어봐도 되는 구조죠.
부검 장면의 디테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장 비대, 혈관 경화, 근육 조직 이상 같은 의학 용어들이 쏟아지지만, 한진우가 하나씩 추론해가는 과정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흥미롭게 연출됩니다. 실제 법의학 전문의가 자문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고증이 탄탄했습니다.
다만 2010년 드라마답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주인공 한진우가 "화장하니 이제 좀 여자 같네"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김성도 법의관 사무실에 포르노 잡지가 붙어 있는 연출은 지금 보면 불편합니다. 솔직히 이런 장면들은 2024년 기준으론 방송 자체가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강경희 형사가 여자 아이돌의 선정적 의상에 대해 "소아성애의 위험"을 지적하는 대사는 당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면 상당히 진보적이었다고 봅니다.
시즌제 드라마의 성공 공식
신의 퀴즈는 국내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정착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시즌4와 리부트까지 제작되며 장수 시리즈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비결은 명확한 주제와 반복 가능한 포맷에 있습니다.
사랑 이야기가 주가 아니라 사건 해결이 중심이기 때문에, 시즌이 바뀌어도 핵심 재미는 유지됩니다. 희귀병이라는 소재 자체가 무궁무진하고, 매번 새로운 의학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죠. 저는 추리 장르에서 연작보다 옴니버스를 선호하는데, 신의 퀴즈가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박재범 작가는 이후 '열혈사제', '김과장' 같은 히트작을 쓰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의 퀴즈가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하윤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지금 봐도 소름 돋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흔치 않습니다. 신의 퀴즈 시즌1은 2010년 작품이지만, 희귀병이라는 시대를 초월한 소재와 탄탄한 법의학 고증 덕분에 여전히 흥미진진합니다. 메디컬 수사극을 좋아하신다면, 또는 시즌제 드라마의 원조가 궁금하시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현재 티빙과 웨이브에서 전 시즌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