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의관이 범인을 직접 추적한다? 경찰이 쓰러진 범인은 제압 안 하고 부상자에게로 달려간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스를 든 사냥꾼'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습니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던 저로서는 드라마화 소식에 기대도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원작의 아쉬운 점들이 그대로, 아니 더 증폭돼서 화면에 담겨 있더군요. 법의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범죄 스릴러라는 독특한 설정은 좋았는데, 정작 그 전문성과 긴장감은 어디로 갔는지 끝까지 의문이었습니다.
원작 소설부터 맥락이 흔들렸던 이야기
메스를 든 사냥꾼의 원작은 경찰행정학 전공 작가가 쓴 범죄 스릴러 소설입니다. 법의관이 주인공이라는 설정 자체는 신선했습니다.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처럼 부검 장면의 디테일과 전문성으로 승부를 보려는 의도가 보였거든요. 저도 그 시리즈 첫 편인 '검시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원작을 읽어보니 기대와 달랐습니다. 부검 장면에서 전문 용어는 나오는데, 정작 현장감이나 몰입도는 떨어졌습니다. 사체의 전체적인 모습이나 자세, 표정 같은 기본 묘사는 없이 부분적인 정보만 툭툭 던지니 독자 입장에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더군요. 부검은 단순히 사인을 밝히는 장면이 아니라, 범인의 성격과 범행 방식, 심지어 동기까지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인데 그런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범인 캐릭터였습니다. 초반부터 범인을 밝히는 구조를 택했으면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야 하는데, 중간중간 주인공의 회상으로만 등장하다 보니 실체가 없는 허상 같았습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처럼 적은 분량으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데, 이 소설의 조균은 끝까지 읽어도 왜 살인을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피해자를 선택하는지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됩니다. 솔직히 다 읽고 나니 이게 범죄 스릴러가 맞나 싶었습니다. 트라우마를 가진 남녀의 치유와 로맨스에 자극적 요소로 살인마를 끼워 넣은 것 같았거든요.
드라마는 원작의 문제를 답습했다
드라마 '메스를 든 사냥꾼'은 원작의 아쉬운 점들을 개선하기는커녕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아니, 영상으로 옮기면서 더 이상해진 부분도 많았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직업의 경계가 무너진 점입니다. 법의관인 서세현이 수사를 직접 나서고, 경찰인 정정현은 범인 제압보다 부상자 돌보기에 집중하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제가 알기로 법의관은 부검을 통해 사인과 증거를 찾아내는 역할이지, 현장 수사나 범인 추적은 경찰의 몫인데 말이죠.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웠습니다. 발연기라고 표현하기엔 조심스럽지만, 몰입이 잘 안 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내용 자체가 맥락 없이 산으로 가니 배우들도 캐릭터에 제대로 빠져들기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캐릭터와 배우의 매칭도 어색했고, 무엇보다 대사와 행동이 상황과 안 맞는 장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범인 캐릭터의 존재감 부족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였습니다. 조균이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 잔인한 범행을 저지르는지, 어떤 트라우마나 정신 질환이 있는지 끝까지 설명이 없습니다. 범죄 스릴러에서 범인의 심리와 동기는 긴장감의 핵심인데, 이 드라마는 그 부분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봐도 공감이나 몰입이 잘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문성과 현실성, 둘 다 놓친 아쉬운 작품
일반적으로 법의관이 주인공인 작품은 부검의 전문성과 디테일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메스를 든 사냥꾼은 그 지점에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원작 소설부터 부검 장면의 현장감이 부족했고, 드라마는 거기에 직업 간 역할 혼선까지 더해지면서 더 어색해졌습니다.
범죄 스릴러 장르를 택했으면 범인의 캐릭터를 제대로 세워야 합니다. 한니발 렉터 같은 압도적 존재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관객이 그의 동기와 심리를 이해하고 두려워할 수 있어야 긴장감이 살아나는데 메스를 든 사냥꾼은 그 부분을 끝까지 방치했습니다. 결국 트라우마 치유와 로맨스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범죄 스릴러 장르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